새동네 - 새에 관한 이야기
비둘기 젖으로 옮는 병 — 조류 트리코모나스증 본문
새로 시작한 5편 시리즈의 마지막 글입니다. 앞서 다룬 네 가지 질환은 모두 세균이나 곰팡이가 원인이었지만, 이번에 다룰 조류 트리코모나스증은 단세포 원생동물 기생충이 일으키는 병입니다. 비둘기와 멧비둘기 사이에서는 "canker"(캔커), 맹금류 사이에서는 "frounce"(프라운스)라는 별명으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새끼에게 물려주는 첫 끼니, 그리고 병
비둘기와 멧비둘기 종류는 어미가 모이주머니에서 만들어내는 "비둘기 젖"을 게워내 새끼를 먹입니다. 새끼는 부화한 지 몇 분 안에 이 첫 끼니를 받아먹는데, 만약 어미가 독성이 강한 기생충 균주를 지니고 있다면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감염되는 셈입니다. 감염 결과는 무증상이나 가벼운 병에 그치는 경우부터, 감염 후 4일에서 18일 만에 죽는 급속한 경과까지 폭이 넓습니다. 이 기생충은 포자나 낭종 같은 저항성 단계가 없어서, 반드시 새에서 새로 직접 옮겨가야 합니다. 오염된 사료나 물을 통한 전파도 흔한데, 감염된 새의 입 안에 생긴 병변 때문에 삼킨 곡물이 잘 넘어가지 못해 다시 게워내면서 사료와 물이 오염됩니다. 구애 행동으로 부리를 맞대고 먹이를 주고받는 습성, 맹금류가 감염된 비둘기를 잡아먹는 행위도 전파를 돕습니다. 축축한 곡물에서는 기생충이 최소 5일, 물속에서는 20분에서 몇 시간까지 살아남을 수 있어, 비둘기와 멧비둘기가 떼 지어 모이는 모이통과 물통은 전파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1949년, 미국 남동부를 휩쓴 발생
많은 조류 질환 전문가들은 트리코모나스증을 북미 Mourning Dove에게 가장 중요한 질환으로 꼽습니다. 1949년부터 1951년 사이 미국 남동부 거의 모든 주에서 수만 마리의 Mourning Dove가 이 병으로 죽는 대발생이 있었고, 그 규모가 워낙 커서 이 병의 생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50~51년 앨라배마에서는 해마다 2만 5천에서 5만 마리가 죽었는데, 실제 피해는 이보다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88년 캘리포니아에서는 Band-tailed Pigeon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발생이 확인되어 1만 6천 마리 이상이 죽었습니다. 철도역 곡물 저장고 주변이나 뒷마당 모이통처럼 새들이 몰리는 곳이 반복해서 발생 거점이 되는 것도 특징입니다.
[심화] 사라진 새와 병들어 온 새
트리코모나스증은 European Turtle-Dove의 개체군 감소와도 관련이 있으며, 이미 멸종한 Passenger Pigeon이 사라지는 데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지목됩니다. 맹금류에서는 Bald Eagle에게서 1977년 뉴욕주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여름 영국에서는 European Greenfinch와 Common Chaffinch 사이에서 이 병이 크게 번져 개체군이 눈에 띄게 줄었고, 이후 발생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뒷마당 모이통에 몰려든 되새류가 집단으로 병에 걸렸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의 세 번째 편에서 다룬 House Finch의 마이코플라스마 결막염과 꼭 닮은 이야기입니다. 병원체는 완전히 다르지만, 사람이 놓아둔 모이통이 병을 퍼뜨리는 무대가 된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병인과 병리 — 무엇이, 어떻게 새를 감염시키나
원인체
조류 트리코모나스증은 단세포 원생동물인 Trichomonas gallinae가 일으킵니다. 이 기생충에는 병을 일으키지 않는 무독성 균주와 병을 일으키는 강독성 균주가 함께 자연에 존재하며, 두 종류 모두 새 개체군 사이를 돌아다닙니다. 어떤 요인이 균주를 강독성으로 만드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생충 자체의 유전적 특성에 좌우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체 비둘기의 80~90퍼센트가 감염되어 있으면서도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무독성 균주에 노출되었거나 가벼운 감염을 이겨내면서 면역을 얻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감염되는 종과 분포, 계절성
비둘기와 멧비둘기에서는 이 병이 주로 어린 새에게 국한되지만, 다른 종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맹금류에서는 원인균이 밝혀지기 훨씬 전부터 수백 년에 걸쳐 이 병으로 인한 죽음이 기록되어 왔습니다. 참새목 조류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보고되지만, T. gallinae는 사육 조류에서 가장 중요한 트리코모나스 기생충으로 꼽히며 사육 집단에서 집단 발병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 사육 칠면조와 닭도 감염됩니다. 이 기생충은 사육 비둘기와 Mourning Dove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할 가능성이 높지만, 야생에서의 발생은 실제보다 적게 보고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이통 주변 발생은 미국 전역에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발병은 연중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대발생은 늦봄과 여름, 가을에 집중됩니다.
임상 증상과 육안 병변
입 안 병변이 먹이 섭취를 방해하기 때문에 감염된 새는 체중이 줄고 무기력해지며 서로 모여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깃털이 헝클어지고, Mourning Dove의 경우 부리나 눈 주변에 치즈 같은 노란 병변이 나타나 얼굴이 부어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심하게 감염된 비둘기는 억지로 움직이게 하면 쓰러지기도 합니다.
병변의 양상은 균주의 독성과 감염 단계, 새의 나이에 따라 다양합니다. 독성이 약한 균주는 침이 늘어나고 입과 목 점막에 염증이 생기는 정도로 그치기도 합니다. 초기 병변은 점막 표면에 작고 또렷한 크림색에서 노란색 반점으로 나타나다가, 병이 진행되면 더 크고 두꺼운 치즈 같은 병변으로 자랍니다. 급성기에는 축축하고 끈적한 분비물과 함께 결절이 나타나고, 만성으로 넘어가면 딱딱하고 치즈 같은 병변이 흔해집니다. 병변은 대개 입 안과 식도에 국한되지만 부리와 눈 바깥까지 번지면 조류 두창과 혼동되기도 합니다. 인두에서 모이주머니로 이어지는 병변이 식도까지 번지면 식도가 완전히 막힐 수 있는데, 막힘이 심하면 질식으로, 먹고 마시지 못하면 굶주림으로 이어집니다. 큰 치즈 같은 덩어리가 입천장과 부비동을 침범해 두개골 바닥을 뚫고 뇌까지 파고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하게 감염된 새는 모이주머니에 많은 양의 액체가 고이기도 하고, 특히 사육 비둘기에서는 기생충이 간까지 침범하며 드물게는 폐까지 번지기도 합니다. 다만 모래주머니 아래쪽 소화관은 거의 침범하지 않습니다.
진단과 방제
비둘기와 멧비둘기에서 상부 소화관을 막는 치즈 같은 병변이 발견되면 잠정적으로 이 병을 의심할 수 있지만, 조류 두창 바이러스나 Aspergillus 곰팡이, 칸디다 효모, Capillaria속 선충, 비타민 A 결핍도 비슷한 병변을 만들 수 있어 확진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확진은 침이나 병변에서 채취한 도말 표본에서 기생충을 직접 확인해야 하며, 표본은 병든 새나 죽은 지 48시간 이내의 신선한 사체에서 채취해야 합니다.
방제의 핵심은 강독성 균주를 지닌 개체를 가려내 제거하는 것입니다. 가금류와 사육 비둘기, 사육 야생 조류 집단에서는 이런 개체 제거와 함께 약물 치료로 성체의 감염을 없애는 방법도 권장되지만, 야생 조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대신 모이통이나 인공 물통에 비둘기와 멧비둘기가 지나치게 많이 몰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야생에서의 전파를 줄이는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가축용 물탱크와 사료 저장 시설, 도시의 모이통 밀집 지역이 특히 관리 대상입니다. 이 기생충은 환경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지만 오염된 사료가 여전히 중요한 전파 경로로 지목되므로, 가능하다면 매일 새 사료로 교체하고 모이통과 그 주변 바닥은 표백제를 10퍼센트 비율로 희석한 용액으로 자주 소독한 뒤 깨끗한 사료를 놓는 것이 좋습니다. 비둘기와 멧비둘기는 맹금류의 먹이로도 자주 쓰이는데, 사육 맹금류에게 먹이로 주기 전에는 반드시 트리코모나스증을 비롯한 감염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심화] 사람에게는 옮지 않는다
T. gallinae가 사람을 감염시킨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확인했듯이, 새 사이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는 병원체라도 사람에게는 옮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약
조류 트리코모나스증은 원생동물 Trichomonas gallinae가 일으키는 병으로, 비둘기와 멧비둘기가 새끼에게 먹이를 게워 먹이는 습성을 통해 어미에서 새끼로 곧바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변은 입과 식도를 막아 새를 굶기거나 질식시키며, 맹금류에서는 감염된 먹잇감을 통해, 참새목 조류에서는 모이통을 통해 옮습니다. 1949년 미국 남동부의 대발생 이후 Mourning Dove에게 가장 중요한 질환으로 자리 잡았고, 2005년 영국의 되새류 집단 발병처럼 지금도 새로운 지역과 종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조류 콜레라, 보툴리즘, 아스퍼길루스증, 살모넬라증, 트리코모나스증까지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조류 질환 시리즈를 마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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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bler, R.M. (1951). A survey of Colorado band-tailed pigeons, mourning doves, and wild common pigeons for Trichomonas gallinae. Journal of Parasitology, 37, 47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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