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의 진화, Evolution of Feather
깃털은 새의 생존과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구조입니다. 이 시리즈는 깃털의 종류, 구조, 깃털갈이, 관리, 색의 발현 원리부터 발생과 진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깃털을 살펴봅니다. 아래 목록을 따라가며 깃털의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오랜 기간 동안 깃털은 파충류의 비늘에서 진화해 왔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는 주로 비늘과 깃털이 모두 피부에서 유래하는 각질성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가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존 이론은 몇 가지 중요한 형태적, 발생학적 차이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비늘은 일반적으로 납작한 판 모양으로, 피부 표면에 층층이 겹쳐지며 성장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깃털은 속이 비어 있는 원통형 관 형태에서 시작하여 복잡한 가지 구조로 분화하며, 표면을 덮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돌출되어 자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질적인 구조 차이로 인해, 단순히 비늘이 점차 길어지고 쪼개져서 깃털이 되었다는 설명은 점점 설득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9년, 예일 대학교의 리처드 프롬(Richard Prum) 박사가 깃털의 진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논문을 발표하며 큰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관 모양의 필라멘트에서 시작한 깃털이 어떻게 현재의 복잡하고 정교한 비대칭 비행깃으로 진화했는지를 발생학적으로 설명했으며, 이 모델은 이후 조류학과 고생물학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칠판 앞에 서 있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프룸 박사가 설명했다........ 프롬 박사는 현재 예일 대학교 조류학과 교수를 맡고 있지만 맨 처음 생각이 떠올랐던 것은 캔사스 대학교에서 강의할 때였다. " 비늘에서 깃털이 진화되었다는 통상적인 이론을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갈 무렵 그 이론이 말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깃털이 그런식으로 진화되었을 리가 없지요!"
깃털,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걸작, 소어 핸슨 지음, 하윤숙 옮김, P 58-59, 에이도스
깃털 진화의 5단계 모델
리처드 프롬 박사의 모델은 깃털이 원형의 표피관(Epidermal Collar)에서 유래하며, 이 구조가 분화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깃털을 형성한다고 봅니다. 아래는 그가 제안한 깃털 진화의 5단계입니다:
Stage I: 필라멘트 깃털
- 표피관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깃털.
- 속이 빈 원통형의 단순한 필라멘트 구조로, 깃털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입니다.
Stage II: 깃가지(Barb) 형성
- 표피관 내에서 깃가지 융기(Barb Ridge)가 형성되며 분화가 시작됩니다.
- 세포들이 서로 갈라져 각각의 깃가지로 발달하게 되고, 솜털 같은 깃털이 만들어집니다.
Stage IIIa: 깃축(Rachis) 분화
- 깃가지 융기들이 중앙에서 융합되어 깃축 융기(Rachis Ridge)가 형성됩니다.
- 그 결과, 깃축과 깃가지만 있는 대칭형의 깃털이 생기며, 이때까지는 작은 깃가지(Barbule)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Stage IIIb: 작은 깃가지(Barbule) 분화
- 깃가지 융기 내에서 두 개의 판(plate)으로 분화가 일어나며, 이 판들이 성숙한 깃털에서 각각의 작은 깃가지가 됩니다.
- 이 단계에서는 깃축은 존재하지 않고, 작은 깃가지가 있는 솜털형 구조로 나타납니다.
Stage IIIa+b: 깃축 + 깃가지 + 작은 깃가지 동시 존재
- IIIa와 IIIb의 특성이 결합되어, 깃축과 깃가지, 작은 깃가지가 모두 존재하는 완전한 대칭 깃털이 만들어집니다.
Stage IV: 고리와 결합구조의 형성
- 작은 깃가지에 갈고리(hooklet) 구조가 형성되며 서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 이 결합 덕분에 깃털은 평면적인 형태로 배열되며, 지금의 몸깃에서 볼 수 있는 조직화된 깃털 구조가 됩니다.
Stage V: 비대칭 깃털의 형성
- 깃가지 융기의 분기점이 약간 등측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좌우 대칭이 깨지고,
- 비행에 최적화된 비대칭 구조의 날개깃과 꼬리깃이 나타납니다.
요약하자면, 원시적인 깃털은 필라멘트 형태(Stage I)로 시작해, 솜털 같은 구조(Stage II)를 거쳐 깃축과 가지가 생기고(Stage IIIa+b), 작은 가지 사이에 갈고리가 생기며 결합 구조(Stage IV)가 형성됩니다. 이후에는 좌우 비대칭의 비행깃(Stage V)으로 진화하여 현재의 복잡한 형태에 이르게 됩니다
논문: Prum, R.O. 1999. Development and evolutionary origin of feathers. J. Exp. Zool. 285: 291–306.
깃털 화석의 발견과 진화의 증거
1996년 중국 요령성의 전기 백악기 지층에서 시노사우롭테릭스(Sinosauropteryx)라는 작은 공룡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이 공룡은 온몸에 필라멘트형 원시 깃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수각류뿐만 아니라 조반류 공룡에서도 깃털 흔적이 발견되며, 오늘날에는 공룡 전체 계통에서 깃털이 광범위하게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깃털은 단지 비행을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보온, 위장, 의사소통 등 다양한 생태적 기능을 가졌던 진화적 산물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결론: 깃털은 비늘이 아니라 표피관에서 비롯된 구조
리처드 프롬 박사의 모델은 깃털이 단순한 비늘의 변형이 아니라, 독립된 진화 경로를 가진 구조물임을 강조합니다. 그에 따르면 깃털은 나선형으로 성장하는 특수한 표피기관이며, 이는 비늘과는 전혀 다른 조직학적, 발생학적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마침내 알아냈습니다. 나선 모양으로 진행되는 깃털의 성장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말이에요. 완전히 별개의 놀라운 생물학적 과정이었던 겁니다.”
— 리처드 프롬, 『깃털,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걸작』
출처 1. Ornithology 4th, Gill and Prum, W.H.Freeman and Compamy.
출처 2. Handbook of Bird Biology 3rd. The Cornell Lab of Ornithology, Wiley.
출처 3. Prum, R.O. 1999. Development and evolutionary origin of feathers. J. Exp. Zool. 285: 291–306.
출처 4. 깃털,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걸작, 소어 핸슨, 에이도스